DMZ 매거진
고향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의 추석 풍경
- 작성자유예은
- 작성일2016.11.03
- 조회수907
고향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의
'추석 풍경'
2016년 9월 15일 추석날 아침,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차례상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북한이 고향이거나,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들이다. 70여 년 동안 망향의 아픔을 간직한 실향민들의 가슴 아픈 추석 차례 현장에 디엠지기가 함께 했다.
큰절 한 번에 눈물 한 방울… “생사라도 알고 싶소”
임진각 망배단 앞, 북녘을 향해 세워진 제단 앞에 정성스럽게 차린 차례상이 놓였다. 줄 지어 선 사람들이 차례로 흰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잔에 술을 가득 담아 올렸다. 큰절 두 번을 한 뒤 고개 숙여 묵념하는 이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흐느낌이 새 나왔다.
이 합동 차례상은 통일부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통일경모회가 주최하는 망향 합동경모대회에서 준비했다.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위해서다. 1979년 실향민 1세대들이 모여 만든 통일경모회가 1회 망향 합동경모대회를 연 것도 벌써 반 세기 전. 함께 추석을 맞은 게 올해로 47회째가 됐다(출처=’통일경모회’ 누리집). 수많은 실향민들은 매년 명절마다 고향 하늘을 우러러 차례를 지내기 위해 임진각으로 향한다.
오환기(85·가명) 씨도 매년 임진각을 찾는 이 중 하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함께였지만, 아내의 건강이 나빠진 뒤로는 홀로 찾곤 했다. 그는 망배단 너머 헐벗은 북한의 산자락을 가리키며 “저 너머에 내 고향이 있고, 헤어진 친족이 있다”고 했다.
오 씨는 북녘을 향해 두 번 큰절을 올린 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직도 고향을 떠나오던 열네 살 소년 시절이 선하다. 그는 황해도에서 전쟁을 피해 책가방만 챙긴 채 급히 배 위에 올랐다. 부모님, 그리고 작은 아버지 가족과 함께였다.
한참을 노 저어 도착한 곳은 피난민들로 북적이던 덕적도. 배급은 나왔지만 피난민 수와 견줘 턱없이 모자랐다. 오환기 씨는 “배가 고파 바닷가에 핀 해당화를 따먹었다”며 “결국 작은 아버지는 ‘집에 있던 쌀을 가져오겠다’며 다시 배를 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헤어진 작은 아버지에겐 딸이 둘 있었는데 나보다 네댓 살 어린 사촌동생들이었다. 이제 그네들도 칠십 대 노인들이 됐겠다. 얼굴은 기억 못 해도 이름은 들어 알고 있을 텐데, 잘 살아 있는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고향 땅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차례를 지내고자 하는 오환기 씨의 마음이 안타까이 전해졌다. 망배단에 모인 실향민 한 명 한 명마다 가슴속 깊이 품은 분단의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을 터다.
고향과 맞닿은 임진각에서, 북을 향해 보내는 인사
이 날 행사에는 통일경모회, 통일부, 이북도민회 등 각계 인사와 많은 실향민이 참석했다. 남궁산 통일경모회장은 “대부분 실향민들은 70~80세 고령자다. 해가 갈수록 수가 줄어들고 고향에 대한 추억마저 아련히 사라져 간다. 재회를 희망으로만 간직한 채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라며 하루 빨리 남북 왕래가 자유롭게 되길 기원했다.
김형석 통일부차관은 “혈육이 함께 하고자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이산가족 실태조사를 실시해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단에는 실향민뿐 아니라 행사에 참관하려는 방문객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유난히 햇빛이 뜨거운 날이었지만 누구도 아랑곳 않고 긴 줄을 묵묵히 기다렸다.
정성스럽게 잔을 올리는 실향민들의 마음이 언제쯤 치유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아픔이 사라질 날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재회의 날이 올 때까지 실향민들은 언제까지고 임진각에 모여 차례를 지내며 고향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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