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매거진
지친 마음, 바람에 곱게 말려 억새 빛깔로 물들이다 –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축제
- 작성자유예은
- 작성일2016.11.04
- 조회수2215
지친 마음, 바람에 곱게 말려 억새 빛깔로 물들이다
–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축제
유독 마음이 찬 시기가 있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그렇다. 한껏 달리다 문득 맨발인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어딘가가 따끔거린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겪는 마음의 사춘기다.
그래서 11월은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이 가을의 향기를 가장 깊게 만끽할 수 있는 곳, 포천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축제를 소개한다.
빨강 노랑 단풍길 한발한발 오르다 보면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명성산을 뒤편에 드리운 숲속 호수다. 이 곳에서는 매년 시월마다 한 달 동안 수도권 최대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10월 1일부터 30일까지 궁예가요제, 사진전, 음식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1코스] 주차장에서 비선·등룡폭포를 거쳐 팔각정에 다다르면 오로지 억새뿐인 군락지가 펼쳐진다.
억새를 보려면 등산은 피할 수 없다. 단단히 채비한 뒤 발을 옮긴다. 길은 산정호수 남단 주차장에서 시작하는데, 경사가 완만해 초반부터 속도가 붙는다. 등산객들을 하나 둘 제치며 걸음을 재촉해본다.
절정을 지나 갓 떨어지기 시작한 단풍잎이 길을 빨갛게 노랗게 수놓았다. 가을 끝자락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지런히 겨울 식량을 비축하는 다람쥐에게도 인사를 건네 본다.
한동안 등산로 옆으로 물길이 이어진다 싶더니 이내 등룡폭포가 등장한다. 넓고 매끈한 바위에서 한 줄기 폭포가 얌전히 흘러내리는데, 마치 한 줄기 눈물처럼 보인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왕건에게 내몰려 명성산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의 비통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오른 지 한 시간쯤 흘렀을까, 보고픈 억새는 보이지 않고 대신 멀리서 포성이 들려온다. 군 부대포격 훈련장이 근처에 있는 탓이다. 민간인통제구역과 비교적 가까이 위치해선지 포천에는 군인이 흔하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열 맞춰 산을 오르는 모습도 왕왕 눈에 띈다.
억새밭을 앞둔 마지막 반 시간은 제법 숨 가쁜 오르막이다. 등산 준비 없이 왔던 이들이 억새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는 길목이기도 하다. 잠깐 쉬어갈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고지가 코앞이다.
바람이 휘돌아나간 자리에 백금빛 억새 물결이
두 시간 가량 오른 끝에 완만한 능선에 도달한다. 하나 둘 억새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더기로 시야를 가득 채운다. 능선 따라 끝에서 끝까지 핀 백금빛 억새꽃이 눈부시다.
쨍한 가을햇살 아래 금빛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서걱서걱 울어댄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하는 옛노래의 ‘으악새’가 새의 일종인지, 억새를 가리키는 방언인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는데, 이 곳에서만큼은 억새를 가리키는 것만 같다. 바람에 억새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어쩐지 처연하다.
어떻게 이 높은 산 정상을 억새가 점령했을까. 명성산은 1950년대 화전민들이 살던 땅이다. 산에 불을 붙여 태운 뒤 밭을 일구고 타우길 반복해 높은 산 정상을 비옥한 토지로 만들었다. 지금은 다른 풀보다 생명력이 강한 억새풀이 자라 대규모 군락을 이루게 됐다.
20만 평(약 66만㎡)에 이르는 너른 땅을 태워 삶터로 바꿔낸 옛 사람들의 의지도, 그 곳을 다시금 되찾고야 만 억새들의 생명력도 모두 경이롭다. 어찌 보면 이 억새꽃밭은 강인함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 억새와 갈대, 뭐가 다를까?
억새와 갈대 모두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물가에서 잘 자라는 갈대와 달리 억새는 산이나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줄기가 빈 갈대와 반대로 억새는 줄기 속이 꽉 찬 게 특징인데, 그래서 좀더 질기고 억센 느낌을 준다. 생명력도 강한 편이라 여기저기 군락을 이뤄 잘 자란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억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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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들의 춤사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쓰다듬다
억새밭 사이로 난 흙길을 가만가만 밟아본다. 이따금씩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볼이며 귀를 간지럽힌다. 좀 쉬었다 가라고 마치 말을 거는 듯 하다. 경주하듯 등산로를 올라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좀더 천천히, 머리를 비우고 주변을 둘러본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코끝이 시릴 때까지 한 장소에 머무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얗게 부서지는 억새의 부드러운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음이 충분히 쉴 때까지 곳곳을 걷는다. 다행히 억새밭은 충분히 넓다. 구름이 해를 가릴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풍경을 하염없이 보다, 어느샌가 에너지가 담뿍 차오른 것이 느껴진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하산길에는 작은 돌탑들을 발견했다. 오를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납작한 돌을 하나 쌓고 소원을 빈다. 언제고 지칠 때 다시 억새밭을 떠올리기를, 그리하여 억새들의 강인함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버스로 강원도 철원 운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산정호수 방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대중교통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이용을 추천.
- 승용차: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산정호수주차장’을 목적지로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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